INTRODUCTION
청소년 핸드볼 국가대표 출신 포크가수 서유석
포크가수 서유석은 청소년 핸드볼 국가대표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독특한 허스키한 발성으로 인해 한때 많은 개그맨들의 모창 대상자로 인기를 얻었다. 서울중학교에 입학한 그는 미군방송 AFKN을 통해 흘러나오는 팝송들에 빠져 공부는 뒷전이었다. 서울고등학교 재학시절에 청소년 핸드볼 국가대표선수로 선발된 그는 1964년 체육특기자로 성균관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학교선배 오세춘(전설적인 포크가수 오세은의 친형)에게 기타를 배운 그는 대학 3학년 때, 명동 미도파 살롱의 아마추어 노래자랑대회에 참가해 4주 연속 우승하며 노래실력을 인정받았다. 1968년 대학졸업 후, 실업 핸드볼 선수생활을 잠시하다 한 달 만에 그만둔 서유석은 모교 성균관대학교 앞에 위치했던 라이브카페 카사노바의 지배인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어느 날 인기 남성듀오 '에보니스'의 멤버 윤형민이 펑크를 내버렸다. '땜빵가수'로 무대에 올라 노래를 했던 서유석은 손님들로부터 예상치 못했던 좋은 반응을 얻었다. ‘노래 잘하는 매니저’로 입소문이 난 이후 업소에 놀러 온 코미디언 구봉서가 정식 가수데뷔의 길을 주선했다. 1969년 영화「로미오와 쥴리엣」의 주제곡 [A time for us]를 번안한 데뷔곡 [사랑의 노래]를 발표하며 음악관계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후 서유석은 1970년 서울 명동 YWCA 청개구리 홀 개관에 참여하며 포크가수로 명성을 날리며 청년문화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싱어송라이터라는 존재감을 지녔던 그는 남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구수한 저음과 진성과 가성을 넘나드는 탁월한 창법 그리고 심야 라디오 인기음악방송의 진행자로 당대 청년세대들과 소통하며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창작곡을 쓰기 시작한 서유석
무려 반세기를 넘겨 재발매된 이 앨범은 1971년 5월 애창 팝송을 번안했던 첫 독집「서유석 GOLDEN ALBUM」의 성공에 힘입어 연속 발표한 그의 두 번째 독집이다. 음반 한 장에서 여러 곡이 동시다발로 히트한 이 앨범은 서유석의 향후 음악행보에 힘을 실어주었던 인생앨범이다. 앨범 재킷 이미지는 서울 뚝섬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합성한 결과물이다. 재킷 뒷면에는 당시 그가 출연했던 서울시내 다운타운의 라이브클럽 코스모스 살롱과 이화여자대학교 강당 공연 사진으로 꾸며져 있다. 70년대 한국포크계의 맏형인 서유석의 초창기 음악 활동을 엿보게 하는 귀한 자료들이다. 총 10곡이 수록된 이 앨범은 번안 곡으로 앨범을 채웠던 첫 독집과는 달리 자신이 곡을 만들고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존재가치를 알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곡의 창작곡 외에 수록곡의 대부분인 번안 곡들은 엄진이 편곡에 참여했고 서유석은 노래가사를 시대상에 맞게 수정한 개사작업을 직접 시도했다.
악의적인 말장난에 얼룩진 [아름다운 사람]
이 앨범을 통해 발표한 서유석의 첫 창작 포크송은 독일의 유명 시인이자 소설가인 헤르만 헤세의 시를 차용한 [아름다운 사람]과 [대답은 없어라] 2곡이다. 특히 [아름다운 사람]은 신나는 하모니카와 작렬하는 기타 연주, 백 허밍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 동시대 학생층으로부터 큰 사랑을 이끌어냈던 이 앨범의 최대 히트곡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사람]은 당대 남성들의 악의적인 말장난에 시달린 아픔을 지닌 사연이 많은 곡이다. 당시 이 노래의 가사 중에서 “돌보지 않는 나의 사람아”라는 부분을 여성 성기를 연상케 하는 ‘돌보지’라는 가사만 장난삼아 반복해 부르는 남성이 유독 많았다. 심지어 음반에서 그 가사가 나오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흠집을 내버려 훼손된 부분에서는 바늘이 튀어 그 소절이 반복되게 만드는 짖궂은 장난을 치는 사람들이 상당했다.
개사자를 잘못 표기해 금지된 번안 곡 [비야 비야]
서유석의 창작곡 [아름다운 사람]과 더불어 이스라엘 민요를 번안한 타이틀곡 [비야 비야]도 발표 후에 반향이 대단했던 동반 히트곡이다. 이 노래에서는 빗소리, 천둥소리 등 효과음까지 넣는 참신한 음악적 시도로 인해 곡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 노래는 앨범 뒷면에 인쇄한 가사 밑에 곡에 대한 친절한 해설을 달고 있어 특별하다. 가사 중에 등장하는 ‘비’, ‘가마’, ‘나’, ‘연지’, ‘곤지’ 등은 단어는 평화를 상장하는 단어들로 ‘겨울비’는 전쟁을, ‘누나’는 평화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의미심장한 해설에도 불구하고 히트 이후에 널리 알려지면서 이 노래도 구설수에 휘말렸다. 구전가사를 수정한 개사자의 이름을 잘못 명기한 크레디트가 문제였다. 과거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서유석은 “어느 분이 이 가사를 만들어 YMCA에서 보급한 것을 본인이 곡 흐름에 무리 없는 한도 내에서 수정하여 음반에 담은 것”으로 설명했지만 앨범에 ‘서유석 개사’로 표기한 것이 잘못이었다. 당시 원작자인 신일고등학교 교사 한태균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이 곡은 한동안 방송이 금지되기도 했다.
사회 풍자적 노래로 획득한 별명 ‘한국의 밥 딜런’
2면 타이틀곡 [세상은 요지경]은 팝송 [Games People Play]를 한국적 정서가 묻어나는 각설이 타령조로 개사한 번안곡이다. 총 5절로 구성된 이 노래는 1970년대 초반의 당대 사회를 비꼬는 현실비판적인 내용으로 당대 청년세대들과 강력한 공감대를 형성했던 해학적인 포크송이었다. 하지만 '영어공부 십년에 생각나는 건 노래가사, 엿새 동안 죄를 짓고요 하루만 기도하면요 천당 간다네'등 시니컬한 가사내용은 방송부적격이란 이유로 금지도장이 찍혔다. 밥 딜런(Bob Dylan)의 명곡 [Blowing In The Wind]을 개사한 번안 곡 [파란많은 세상]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히트곡이다. 서유석은 “학교 앞에 책방은 하나 양장점은 열, 책방은 하나 대포집은 열” 식으로 당시 상업적으로 변해가는 대학가 풍경을 꼬집었다. 이 노래 역시 가사 내용이 방송에 부적격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당시 사회상에 대한 비딱한 시선을 담아 히트했던 [세상은 요지경]과 [파란많은 세상]의 금지로 인해 서유석은 ‘한국의 밥 딜런’이란 별명을 획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후 서유석은 단순한 인기가수를 넘어 1970년대 청년 문화를 주도하는 저항적 이미지의 포크 가수로 거듭났다. 이 앨범이 1970년대 한국 포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음반으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가 바뀐 1972년 1월 1일 인기절정이었던 서유석은 돌연 출연업소인 코스모스 살롱에서 잠적했다. 뜻한 바가 있어 화려한 밤무대를 벗어나 전국 각 대학 캠퍼스와 공회당에서 '고운 노래 부르기' 캠페인과 시와 노래의 접목을 통해 한국적인 창작가락을 추구했던 ‘맷돌’ 공연 등 포크송 보급운동에 뛰어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대중적 인기와는 거리를 두게 된 이 잠적기간동안 소위 '서유석의 3대 명반'이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최규성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한국대중음악 자료수집 연구가